※언제나 캐붕주의

※동화풍 판타지같은 느낌이 가미된 수인물입니다. 

   - 쿠로오: 고양이과 수인 / 츠키시마: 인간 

※약 8,800자 분량입니다.















쿠로오씨, 이리온~

쿠로오 테츠로×츠키시마 케이












 01. 조각구름 가득한






 연노란빛 머리색을 가진 한 소년이 주위를 살피더니 곧 숲속으로 들어갔다. 어깨에 걸쳐 입은 까만색 교복 망토가 걸음걸음에 흔들렸다. 추운 지방이니만큼 숲 전체에는 뾰족한 침엽수*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는데, 작은 샛길을 따라 몇 분 정도 걸어 들어가니 햇빛이 유난히 밝게 비치는 작은 공터에 큰 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크고 풍성한 잎사귀가 따뜻하고 신비로워 보였다.



  "쿠로오-"



 큰 나무 아래에 자리 잡은 소년이 조용히 누군가를 불렀다. 그러자 나무 위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검은 물체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줄곧 무뚝뚝한 표정을 하고 있던 소년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어렸다. 

 나무 아래에 착지한 것은 고양이와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까만 동물이었다. '쿠로오'**라는 이름을 가진 이 동물은 고양이와 닮긴 했지만 몸집이 훨씬 크고 다리가 길쭉한 것이 전체적으로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오늘은 참치야."



 쪼그려 앉은 소년은 '쿠로오'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더니, 입고 있던 망토에서 참치가 든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특유의 기름진 냄새가 '쿠로오'의 예민한 코를 자극해왔다. 반쯤 감겨 나른해 보이던 눈이 단박에 동그래졌다.

 '쿠로오'는 한껏 들뜬 기분에 꼬리를 바짝 세우고 먹을 것을 기다렸다. 곧 소년의 하얀 손바닥 위에 고소한 참치살이 올려졌다.



  '할짝할짝'


  "쿡쿡, 맛있어?"



 손바닥을 핥아오는 까슬한 혀가 간지러워 웃음이 났다. 맛있었는지 빠른 속도로 참치를 먹어치운 '쿠로오' 덕에 소년이 가져온 주머니 안은 금세 비워졌다. 

 적은 양에 더 먹고 싶은 듯 제 손을 샅샅이 핥아오는 게 무엇보다 귀여웠다. 덩치가 좀 커서 그렇지 웬만한 고양이들보다 애교도 많고 저를 잘 따라서 예뻐하지 않을 수가 없는 아이였다. 


 소년이 미소 가득 그를 쳐다보는 사이 '쿠로오'는 손을 할짝이는 것을 그만두고 그의 까만 얼굴을 살살 비벼왔다. 그만의 애정표현을 하는 중이었다. 이에 소년도 '쿠로오'의 턱 부분을 살살 긁어줬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이 꼭 사람같았다. 



  '오늘도 역시 울음소리는 내질않네, 더 귀여울 텐데-'



 그렇게 몇 분을 나무 아래에 앉아 '쿠로오'와 놀아주던 소년은 시계를 꺼내보더니 주섬주섬 학교로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다시 무표정으로 변해가는 얼굴에는 벌써부터 우울함이 드리우고 있었다.



  "쿠로오, 나 이제 가봐야 돼. 곧 점심시간 끝나니까."



 소년이 까슬한 털을 쓸어내려주며 말했다. 꼭 제 말귀를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방금까지만 해도 발랄하던 꼬리가 아래로 축 처졌다. 개냥이라고 하던가, 정말이지 이럴 땐 고양이가 아니라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내일도 여기서 기다려, 먹을 거 또 갖다 줄게."



 잔뜩 아쉬워하는 그 모습에 한걸음조차 떼기가 힘들었지만 수업에 늦으면 곤란했다. 소년은 한 번 더 '쿠로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곤 공터를 벗어났다.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에 연노란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




 딱딱한 전공과목 교수의 목소리가 소년의 머릿속을 헤집었다. 교수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그렇게 성실히 수업에 참여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집중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조금 전 숲에서 헤어진 '쿠로오'가 벌써 보고 싶었다. 제게 삭막하기만 한 이 학교에서 그나마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그 공터에서 '쿠로오'와 함께일 때뿐이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꼬리가 축 쳐져 있던 모습이 눈앞에 선했다. 



  '나도 정말 오기 싫었는데..'

  '제발 빨리 좀 끝났으면..'

  '내일은 뭘 가지고 갈까? 참치가 마음에 든 것 같던데...'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났으면 하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강의 내내 하얀 하늘만을 바라봤다. 기분이 우울해서일까 멀쩡한 하늘빛마저도 마음에 안 들었다.


 지루하기 짝이 없었던 시간이 흘러 이제 기숙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금요일 오후에는 전공수업 하나뿐이라 다른 때보다 일찍 학교가 파하지만, 이미 온몸에서피곤하다고 아우성이었다. 결국 일찍 끝나든 늦게 끝나든 피곤한 건 매한가지였던 것이다. 

 소년은 책과 필기구를 챙겨 들고 하교로 분주한 복도를 걸었다. 광장으로 나오니 보이는 노을이 꽤 붉었다. 이제 몇 달만 더 있으면 이 지긋지긋한 아카데미와도 졸업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졸업식 날이 왔으면 했다. 자신에겐 지난 3년이 너무도 고달팠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터벅터벅 기숙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니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역시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줄곧 무표정이었던 소년의 얼굴이 미미하게 찡그려졌다.



  "제가 '그 애'래."


  "그 '츠키시마가'의 둘째?"


  "그렇다니까, 약학부 소속 '츠키시마 케이'."


  "히익, 더이상 쳐다보지마. 우리도 저주받을 거라구!"



 곳곳에서 수군대는 소리 속에 소년의 이름이 섞여 나왔다. '츠키시마 케이"라는 이름이었다. 



  "저게 '그거'야?"


  "그렇다니까,저 머리색이랑 안대. 틀림없어."


  "헤에, 저게 그 '악마의 자식"이란 말이지."


  "'저주받은 눈'이라니, 더러워."


  "형도 잡일꾼이라던 걸. 천하게-"



 아예 대놓고 소년을, 그러니까 츠키시마를 욕하는 소리도 적지 않았다. 꼬박 3년을 받아온 대우였지만 이런건 매일을 당해도 전혀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피해자로서 기분이 나빴지만 츠키시마는 묵묵히 제 갈 길을 갔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위의 수군거림을 무시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나지막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빨리 가서 잠이나 실컷 잤으면 했다.



  "어이!"



 기숙사에 들어가 바로 씻고 누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중 누군가가 츠키시마를 불러세웠다. 잠시 멈칫한 사이, 머리 위에서 끈적하고 탁한 액체가 쏟아져내렸다. 거무죽죽한 것이 머리카락을 타고, 옷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슬금슬금 올라오는 쓴 냄새를 보니, 실습시간에 썼던 약초의 폐수인듯 싶었다. 오늘은 정말 일진이 사나웠다.



  "큭큭, 꼴좋다."


  "이런 쓰레기처리는 쓰레기가 해야지, 안 그래?"



 발밑으로 빈 양동이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굴러왔다. 이 액체가 담겨있던 통일 것이다. 뭐가 그리 재밌는지 저들끼리 낄낄거리는 소리가 심히 귀에 거슬렸지만, 자신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까매진 안경을 대충 옷에 닦아내고, 끈적해진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츠키시마는 제게 이런 짓을 한 패거리를 그저 한 번 째려주고는 다시 기숙사를 향했다. 일대일로 마주하면 찍소리도 못할 것들이 집단의 힘을 빌려 나대는 꼴이 너무도 우스웠다. 하아, 뜻하지 않은 빨래가 추가됐으니 이번 저녁 시간도 편히 쉬지는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츠키시마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은 독특한 그의 눈 색 때문이었는데, 이 눈 색은 어쩌면 츠키시마의 어린 시절을 송두리째 앗아간 가장 큰 원인이기도 했다. 

 왼쪽의 짙은 황색의 눈동자는 여느 타인과 다름없이 평범했으나 오른쪽 눈이 문제였다. 츠키시마의 오른쪽 눈동자는 이 나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코랄색***이었다.

 나름 이름있는 지방 귀족이었던 '츠키시마가'는 새로 태어난 둘째아이가 저주를 받았다는 악질적인 소문과 함께 몰락해갔다. 그래도 그 소문뿐이었다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마침 어려워진 재정 상황과 불의의 사고로 인한 양친의 죽음은 '츠키시마'라는 귀족의 성(姓)을 모두의 머릿속에서 지우기에 충분했다. 이때가 츠키시마가 고작 3살 때의 일이다. 

 그 후 츠키시마는 제 형의 끝없는 헌신으로 지금 여기, 모두의 선망의 대상인 국립 고등 아카데미까지 온 것이다. 츠키시마 본인도 끊임없는 차별속에서 평탄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었지만, 귀족으로서의 특권을 버리고 평민으로 일을 하며 저를 보살펴 준 형에 대해서는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바쁘게 해야할 것들을 끝내고 보니 벌써 해가 완전히 저물어 창밖이 깜깜했다. 입맛이 돌지않아 저녁도 거르고 말았지만 별로 배는 고프지 않았다. 지친 몸을 누이기 위해 하나 남은 촛불을 끄니 방안도 새까매졌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으니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내일은 부디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기를.




***




 힘들었던 오전 실습을 끝내고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시간이었다. 망토 깊숙이 참치가 가득 든 주머니를 챙겨 넣고, '쿠로오'가 기다리고 있을 숲속 공터로 향했다. 산길을 걷는 츠키시마의 발걸음이 어느때보다 가벼웠다. 제가 준 참치를 먹으며 기분 좋게 올라갈 '쿠로오'의 꼬리를 생각하니 비죽 웃음이 났다.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약속한 공터에 다다른 후였다.



  "쿠로오-"



 츠키시마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쿠로오'를 불렀다. 덩치 큰 우리 까만 고양이는 오늘도 역시 나무 위에서 뛰어 내려왔다. 츠키시마는 그 까만 털을 쓰다듬어주며 자리에 앉았다. 아카데미에선 긴장감에 날이 서 있던 몸이 노곤노곤 풀어졌다. 

 자리에 앉은 츠키시마가 챙겨온 주머니에서 참치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자, '쿠로오'는 기다렸다는 듯 빠른 속도로 참치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아, 간지러워- 쿡쿡, 오늘은 어제보다 많이 가져왔으니까 더 먹어도 돼."



 '쿠로오'와 만난 지도 어느덧 3개월이 다 되어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를 잘 따라서 친해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쿠로오'라는 이름도 츠키시마가 지어준 것이었다. 

 단지 하나 궁금한 것은 울음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는데, 목을 다친 건지 그냥 말이 없는 아이인건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가져온 참치를 다 먹어치운 '쿠로오'는 만족스러운 듯 배를 내밀고 애교를 부려왔다. 츠키시마는 벌러덩 뒤집어진 그 모습이 귀여워 배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졸업이야.. 내가 졸업하면 쿠로오도 같이 우리 집으로 갈래?"



 몸을 돌려 제 가슴을 앞발로 꾹꾹 눌러오는 모습이 꼭 제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만 같아 웃음이 났다. 후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츠키시마에게 '쿠로오'와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고되기만 했던 지난 학교생활에서, 어쩌면 제 인생을 통틀어서도 유일하게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었으니 말이다. 


 츠키시마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쿠로오'는 다리 위에 아예 자리를 잡고 누워있었다. 그 길쭉한 등을 무의식적으로 쓸어내리던 츠키시마는 갑자기 잊었던 것이 생각난듯 제 망토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츠키시마의 손에 들린 것은 참치를 가져왔던 주머니가 아닌 또 다른 주머니였다. 탄탄한 가죽이 세련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주머니 안에는 은은한 남색 빛깔의 실 목걸이가 들어있었는데, 은으로 된 중간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른 특별한 장식 없이 목걸이 줄 하나로만 이루어진 심플한 디자인이었다. 두께는 실 목걸이답게 매우 얇았지만 실이 빳빳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튼튼해 보였다. 츠키시마는 목걸이의 이음새 부분을 풀어 '쿠로오'의 목에 걸어주었다. 



  "내가 주는 '선물'이야. 잘 어울리는 것 같네."



 '쿠로오'는 이미 잠에 빠져있어서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깨어있었다고 해도 좋아해 줄지는 의문이었다. 말도 할 수 없는 고양이에게 그런 리액션까지 바라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었다. 그저 하나의 자기만족이었다.

 '쿠로오'를 보며 슬쩍 미소 지은 츠키시마는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었다.




***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늘은 츠키시마의 졸업식 날이었다. 흰 와이셔츠에 남색 넥타이, 차콜색 교복 바지와 까만 망토, 졸업생의 상징인 학사모까지.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에서 사뭇 진지함이 느껴졌다. 

 츠키시마는 4년을 지내온 좁은 기숙사 방안을 쓱 한 번 훑어보곤, 미리 싸둔 짐을 챙겨 빠르게 기숙사를 빠져나왔다. 몇몇 책을 제외하고는 딱히 개인용품이 없는지라 다른 학생들보다는 짐가방이 가벼웠다. 터벅터벅 밖으로 나오니 온화해진 3월의 햇빛이 저를 반겼다.



 졸업식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되어 약 2시간 만에 끝이 났다. 축하사를 듣고, 사진을 찍고, 지극히 의례적인 절차를 거쳐 드디어 아카데미 졸업증이 손에 들어왔다. 그간의 노력이 이 종이 한 장에 담겨있다고 하니 어쩐지 조금 허무함이 밀려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형이 기다리고 있는 마을로 돌아가, 제가 약사로서 어느 정도 자리매김만 잘한다면 앞으로의 삶이 훨씬 수월해질 것은 분명했기에 쓸데없는 허탈감은 떨쳐버렸다. 더는 형이 힘들게 일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지금 츠키시마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잠시 후, 마지막 절차인 졸업증 수료식이 끝나고 행사가 완전히 파하자, 각자의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학생들로 학교 전체가 소란스러워졌다. 딱히 학교 자체에 미련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 부러운 풍경을 보니 절로 쓸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답답한 기분을 달래러 제 유일한 안식처인 '쿠로오'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기껏 구해놓은 기차시간에 맞출 수가 없게 돼버렸다. 사실 지금도 시간이 꽤 빠듯했다. 

 숲 쪽 방향을 바라보는 츠키시마의 눈빛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지만 시간을 오래 끌면 끌수록 힘들어지는 건 그 자신이었기에 빠르게 발길을 돌렸다. 이제 까만 고양이 '쿠로오'와의 짧은 만남도 끝이었다.




***




 기숙사를 출발해 덜컹이는 기차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가면 어느 지방의 중심지에 도착한다. 시끄러운 번화가를 벗어나 또 한참을 걸어가면 빽빽한 숲에 둘러싸인 작은 시골 마을 하나가 나타나는데, 그곳은 어린 나이에 양친을 잃었던 츠키시마 형제가 주위의 경멸어린 시선에 못 이겨 도망쳐나온 처음이자 마지막 은신처였다. 그래서 두 형제에게는 이 마을이 실질적인 고향에 가까웠다.

 양손 가득히 짐을 들고, 오랜만에 걸어보는 구불구불한 오솔길이 꽤 반가웠다. 그간 형편이 어려웠던 탓에 마을에는 약 2년 만에 돌아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벌써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츠키시마는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걷기를 몇십분. 저녁이 되어 싸늘해진 날씨에도 불구하고 등 뒤에 송골송골 땀이 맺혀갈 때쯤, 저 멀리 마을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오솔길을 걸으며 반가웠던 기분도 잠시, 고향인 이곳 역시 저를 반겨줄 이는 없었기에 츠키시마는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외투의 모자를 단단히 뒤집어쓰고 마을로 들어갈 준비를 했다.

 

 그렇게 꼼꼼히 준비를 마치고 입구 근처로 다가가니 마을 이름이 적힌 팻말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잿더미가 쌓여있는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엄습하는 불안감에 살며시 마을로 들어서니 경악할 만한 광경이 펼쳐졌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멀쩡히 서 있는 집 한 채를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곳곳에는 까맣게 그을린 자국들이 가득했고, 건물이란 건물은 모두 무너져 재가 되버린 지 오래였다.

 초토화되버린 마을에는 당연한 사실이지만 남겨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온기가 없는 마을은 말 그대로 텅 비어있었다. 믿을 수 없는 풍경에 도저히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가 힘들었다.


 츠키시마는 빠르게 걸음을 옮겨 형과 함께 살았던 집을 찾았다. 비록 마을 깊숙한 구석에 있는 작은 집이었지만 어린 추억이 담겨있는 나름 소중한 집이었다. 

 츠키시마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달려 도착한 곳에는 원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제 집이 있었다. 결국 간신히 서있던 다리에 힘이 풀렸다.



  "하..하하..."



 충격으로 얼룩진 얼굴에서 자조 섞인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형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편지 이외의 연락수단은 없었기에 찾을 방법이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철저하게 츠키시마, 자신만이 혼자였다. 왜 저만 매번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억울함이 몰려왔다. 2주 전 형에게서 온 편지에는 이런 거지 같은 상황이 적혀있지 않았으니 일이 일어난 것은 아마 그 후일 터였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은 불빛 하나 없는 이곳의 시야를 더욱 까맣게 가려갔다. 날카로운 바람도 불어와 사방으로 재가 날렸다. 마른기침이 터져 나와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억울해서 나는 눈물인지 기침때문에 나는 눈물인지. 길바닥에 주저앉아 습기 가득한 눈을 하고, 기침을 콜록이는 제 모습이 꼴사납기 짝이 없었다.

 츠키시마는 기침이 조금 잦아들자 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적어도 삭막함뿐인 이 장소에 더이상 남아있고 싶지 않았다. 



 마을 뒤편으로 조금만 걸어나가면 하얀 자작나무****숲이 나온다. 날이 좋을 때면 제 형과 종종 놀러 갔던 곳이다. 츠키시마는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깜깜한 숲을 헤메이다 가지런히 쌓여있는 자작나무 더미를 발견했다.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나무를 하러 올 멍청한 사람이 있나 싶었지만, 몸도 정신도 지칠 대로 지친 츠키시마에게 그런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제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도 알기 어려울만큼 시야도 좁아져 츠키시마는 더 걷기를 포기하고 털썩 나뭇더미에 기대앉았다. 가만히 앉아 있으니 또 다시 사무치는 외로움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흡...흐윽...."



 기다리고 기다리던 졸업식을 마치고 앞으로 더 힘든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울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무서우리만치 조용한 숲속에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울려 퍼졌다.


 


 








_continued





침엽수*: conifer, 針葉樹. 대부분은 잎이 대개 바늘같이 뾰족해서 바늘 침(針)에 잎 엽(葉)자를 붙여서 침엽수라고 함.

(배경이 추운 지방이라 침엽수 가득한 숲은 아래 사진 정도의 이미지를 상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작중 배경이 추운 지방이라고 해서 눈 내리고 막 어두컴컴한 그런 풍경은 아니에요_+)작중 배경이 추운 지방이라고 해서 눈 내리고 막 어두컴컴한 그런 풍경은 아니에요_+)작중 배경이 추운 지방이라고 해서 눈 내리고 막 어두컴컴한 그런 풍경은 아니에요_
+)작중 배경이 추운 지방이라고 해서 눈 내리고 막 어두컴컴한 그런 풍경은 아니에요_




'쿠로오'**: 제가 설정한 쿠로오의 동물형 모습은 아래 사진과 같은 흑서벌이지만, 대부분의 서벌은 동영상과 같은 색에 저런  얼룩 무늬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영상에서는 크기와 울음소리를 확인하실 수 있어요. (사실 사바나캣이랑 생긴 게 좀 헷갈려서 제대로 가져온 건지 잘 모르겠네요)

black serval. (출처는 구글입니다. 문제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black serval. (출처는 구글입니다. 문제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black serval. (출처는 구글입니다. 문제시 삭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코랄색***: coral. 우리나라 말로 산호색이라고 쓰기도 함.

(아래 그림의 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제가 표현해놓은 색은 그냥 코랄보다는 코랄 핑크에 가까운 색이지만, 딱 이 정도 색을 생각하고 썼어요)

(위 그림은 캡쳐사진을 리터칭한 것입니다)(위 그림은 캡쳐사진을 리터칭한 것입니다)
(위 그림은 캡쳐사진을 리터칭한 것입니다)




자작나무****: birch. 위도가 높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시베리아나 북유럽, 동아시아 북부, 북아메리카 북부 숲의 대표적인 식물. 




2017/05/09_1차 수정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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