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보고 글쓰기(1) _ '흔적' - 원태연

※ 새드엔딩, 사망소재 주의

※ 아카아시 시점, 약 12,000자 분량입니다.










흔적


- 원태연



부지런하셨네요

참 부지런도 하셨네요

어쩜

이렇게도 많이 남기셨는지......


부지런하셨네요

참 부지런도 하셨네요.

















흔적

보쿠토 코타로 ×아카아시 케이지

 




  참 갑작스러운 사고였다. 그렇게 사라져 버리리라곤 조금도 상상치 못했다. 빛과 같이 밝은 사람이었기에, 항상 모두의 쨍한 별과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의 부재는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언젠간 익숙해지겠지, 잊혀지겠지 입을 모아 말하지만 어쩌면 영영 익숙해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래.

 그냥 익숙해지지 않았으면 하기도 해.



***



 조금은 이른 시각, 아침연습을 위해 눅눅한 몸을 일으켰다. 밤새 가려둔 커튼을 걷어내니 비쳐오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밝다.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언제나의 습관대로 밥을 챙겨먹고, 적당히 가방을 챙겨 빠르게 집을 나섰다.

 길에는 다니는 차도 사람도 많지 않아 꽤나 조용했다. 옆집의 강아지 한 마리가 왈왈 짖어대는 소리만이 유독 두드러졌다. 정적을 방해받는 느낌이었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여름이 다가와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이젠 새벽의 날씨도 그리 쌀쌀하지만은 않았다. 체육관에 도착해 스트레칭으로 조금만 몸을 데우고 나면 등뒤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릴터였다.

 정문을 통과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바로 체육관을 향했다. 열쇠는 나의 담당이었기에 먼저 문을 열어두는 편이 덜 귀찮았다. 열쇠를 꽂아 잠금만 풀어두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 다음 목적지는 탈의실이었다. 어쩌면 벌써 와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일찍 오는 편이긴 했지만 간혹 더 일찍 도착한 사람들은 열려있지 않은 체육관을 두고 탈의실에서 저를 기다리곤 했다.(탈의실 열쇠는 공용으로 부원들만 아는 근처 비밀장소에 숨겨두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은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지만. 아마 열쇠고리에 운동부 답지않은 하얀 리본장식이 달려있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탈의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왠지모를 텁텁함만이 공간을 메워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켰다. 들어오는 바람은 전혀 없었지만 아까보단 더 나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탈의실을 나섰다. 왔다갔다 하는 것이 늘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불만을 외칠 정도는 아니었기에 표현은 하지 않는다. 그저 언제나의 무표정.


 체육관 앞에 다다르니 멀리서 어슴프레한 인영하나가 걸어오는게 보였다. 손을 들어 나를 부르고 있는 걸보니 3학년 중 한 명인듯 싶었다.


  "어이, 아카아시-"

  "아, 코노하선배. 일찍 오셨네요."

  "그냥 눈이 좀 일찍 떠져서."

  "그런가요. 방금 탈의실도 열어놨어요."

  "어. 먼저 준비하고 있어."

  "네."


 오늘도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는 선후배간의 아침인사. 코노하선배를 시작으로 이제 하나둘 사람들이 도착할 터였다. 서둘러 준비를 시작해야했다.


 바닥과 마찰해 삑삑대는 신발소리가 들린다. 천장도 닿지 않는 큰 체육관은 금세 땀냄새로 가득찼다. 이러니 문을 닫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다. 특히나 오후 연습때는 날이 더 더워져 환기를 깜빡했다가는 온 몸에 느껴지는 불쾌함이 도를 넘어서곤 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적당히 정리하고 해산해."

  "네."


 선배의 말에 우렁찬 대답소리가 울려퍼진다. 다들 아침이라 아직은 큰 소리 낼 기운이 남아있는 듯 싶었다.


  "이따 오후에도 늦지말고."

  "네."


 각자 맡은 부분을 정리하고 하나둘 체육관을 벗어났다. 마지막 마무리는 내가 해야 했기에 남아서 자리를 지켰다.


  "아카아시, 이따 봐."

  "네. 이따 뵈요."

  "그래."


 모두가 돌아간 후, 잊은 건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을 마치고 전체 불을 내렸다. 텅 빈 체육관이 조용했다. 하지만 깜깜하진 않았다. 단지 숨이 좀 갑갑했다. 평소보다 무리한 건지도 모르겠다.



***



 교실에서의 시간은 더욱 더디게 흘렀다.  마음은 벌써 점심시간이었지만 실제는 안타깝게도 이제 막 3교시가 시작된 참이었다.

 3교시는 문학으로 선생님의 목소리가 유난히 나긋나긋해 반 아이들 모두가 자장가로 애용하고 있었다. 오늘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하는 몇몇을 빼고는 거의 수업을 듣고 있지 않았다.


  "아카아시, 네가 한 번 읽어보겠니."

  "네."


 뜻밖의 지명이었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워낙 없는지라 그간 이렇게 시키신 적은 없었는데, 뭐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읽어야할 부분은 윤동주 시인의 '서시'라는 시였다. 작은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시인의 심정이 어쩐지 머리속에 꽂혀들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에 바람이 스치운다."

  "그래, 자리에 앉아라. 이 시는 윤동주라는 시인이 남긴 것으로..."


 다시 자리에 앉은 후, 끝종이 칠 때까지 문학선생님의 긴 설명은 쉬지않고 계속됐다. 느른한 말소리가 뇌를 거치지 않고 스쳐지나가 결국 필기를 하나도 하지 못했다. 정신이 어딘가 산만해서 그럴만한 기분이 들지 않았다. 늘어지는 교실의 분위기 때문일까. 아무래도 나중에 반아이의 것을 빌려야 할 것 같다.

 쉬는 시간이 시작되고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다른 반에서 놀러오는 아이들도 있어 주변이 시끄러웠다. 웅웅 울리는 고막과 밀려드는 피곤함에 살며시 책상위로 몸을 엎드렸다. 언제쯤 학교가 끝이 날지 남은 교시가 벌써부터 까마득하다.



***




  "쾅-!"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그 사람에게 반한 것도 얼마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본 순간부터 반해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은 비교적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아마 담임선생님의 심부름으로 늦은 하교를 하던 중이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귀찮아하며 심부름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하늘에 붉은 노을이 내려앉을 쯤에야 할 일이 끝나 터덜터덜 교무실을 벗어났었다. 찬찬히 집에 가서 해야할 일들을 머리속으로 정리하며 교무실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본교사를 나와 발걸음을 재촉하던 길. 그 길위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강렬한 스파이크를, 그를 보았다.

 쾅하고 내리꽂히는 소리가 상쾌하게 가슴을 뚫었다.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절로 시원해지는 스파이크였다. (사실 공을 올려주는 사람이 없어 스파이크라곤 할 수 없었지만 공을 내리치려고 뛰어오른 그의 모습은 완벽한 스파이크 자세였다)

 나는 그대로 멍해져 활짝 열어젖힌 체육관 문 앞에 서서 한참을 그가 연습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스파이크를 치고싶어 한이 맺힌 사람처럼 세터 한 명 없는 그런 열악한 연습이었지만 그 자체로도 그는 멋있었다. 연습내내 진지하게 내려앉은 금빛 눈동자에는 쭈뼛 소름마저 돋았다.

 꽤 오랜시간이 지나고 학교전체가 파하는 저녁무렵이 되어서야 그의 연습은 끝이 났다. 어딘가 뚱한 표정으로 쓴 공을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무언가 마음에 차지 않는 모양이었다.


 잠시후 깊숙한 공바구니가 불룩하게 다 차갈 때쯤. 돌연 그 사람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이제야 발견한 것 같았다.


  "에..? 너 누구야?"


 그는 호기심어린 질문과 함께 성큼성큼 앞으로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더 다부진 근육과 듬직한 덩치에 흠칫 위압감이 들었다.


  "그게... 그냥 지나가던..."

  "아, 그래. 입부희망자구나!"


 본인 마음대로 결론을 내리더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뚱해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활기를 띄었다. 약간은 제멋대로에 기분도 잘 바뀌는 편인 것 같았다.


  "배구 좋아해? 경험은?"

  "조금.."

  "오오, 포지션은?"

  "세터입니다."

  "좋아, 너 합격-! 이름이 뭐야? 난 보쿠토 코타로. 2학년이야."

  "아카아시 케이지, 1학년입니다."


 일방적인 그의 대화방식 때문에 어느새 페이스에 휩쓸려려 순순히 대답을 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이런 경험은 또 생소했다.


  "그런데 합격이라니 무슨..?"

  "음? 우리부 들어오려던거 아니야?"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구경한 것 뿐입니다."

  "그래? 흠.. 그럼 부활동 정한거 있어?"

  "딱히 없습니다."

  "그럼 우리부 들어와. 재밌을거야. 우리학교 배구부 꽤 실력있다고?"

  "아...너무 갑작스럽습니다만.."


 하자면 거절할만한 일은 아니었으나 아직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터라 이런 직접적인 입부제의에 뭐라 대답하기가 조금 곤란했다.


  "그런가.. 아냐, 그냥 우리부 해! 나 공 올려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아무래도 입부제의가 아니었나보다. 그냥 요구인 것 같다.


  "다른 분들이랑 같이 연습 안하시나요?"

  "하는데?"

  "공 올려주실 분 없으시다면서요."

  "그거야 같이 남아서 연습할 애들이 없다는 거지. 다 먼저 가버린다고."

  "그럼 보쿠토상도 그냥 가시면 되잖아요."

  "안돼, 절대 부족하잖아! 새학기라 부활동시간 조금밖에 안된단 말이야."


 이 말을 하는 그는 정말로 무언가 갈망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연습을 강행했음에도 반짝이는 금안은 아직 배가 차지 않아 보였다.


  "그러니까 나랑 같이 배구하자!"


 막무가내인 사람. 그래도 이 휩쓸림이 싫지만은 않다. 그의 연습을 처음 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배구부에 들어가리라 마음먹었는지도 몰라.


  "들어가도 같이 연습해드린다고 한 적 없습니다만."

  "에? 같이 안 해줄꺼야?"

  "...."

  "안 돼. 나랑 해. 내 첫 후배시켜줄께!"


 첫 후배를 시켜준다는 그 당당한 모습에 푸훗하고 웃음이 터졌다. 정말 나보다 한살 위가 맞는걸까. 이 사람이라면 초등학교에 데려다 놔도 잘 놀지 않을까 싶었다.


  "하하. 첫 후배라니 얼마나 부려먹으시려고요."

  "응? 아니 그런 뜻이 아니고...음...그래, 엄청 잘해주겠단 뜻이야!"


 씩 올라가는 입꼬리가 순수하기 그지없다. 그 해맑은 모습에 결국 나도 따라 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가요."


 나의 해바라기가 처음 싹을 튼 날이었다.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멍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주섬주섬 아침에 싸온 도시락을 들고 늘 가던 학교 옥상을 향했다.

 매점을 향하는 아이들을 거슬러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걷자니 열정적으로 뛰어가는 아이들 탓에 툭툭 치이는 어깨가 생각보다 거슬렸다. 아마 눈썹이 찡그려져 있을 것이다.

 마음을 차분히하고 빽빽한 복도를 벗어나니 또 들려오는 소음이 싹 가셨다. 특별실이 모여있는 외진 길로 들어선 탓이다. 이제 두 층만 더 올라가면 작은 도서실 옆에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계단이 있었다.


 끼익- 녹슨 철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체육관 문보다 정도가 훨씬 심해서 기름칠이 간절해 보였다. 문을 열고 나가니 탁 트인 옥상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게 원래는 들어오면 안되는 곳이었다.

 그가 처음 이곳을 소개시켜줬을 때, 제가 1학년때 처음으로 발견했다며 매우 뿌듯한 표정으로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 생긴 후배이니 특별히 가르쳐주는 거라고도 덧붙였었다. 그리고 그의 권유로 배구부에 들어가고 난 뒤로는 줄곧 여기서 둘이 점심을 먹었었다. 더할나위 없는 시간들이었다.



 그러게.

 항상 여기에 나란히 앉아 점심시간을 보냈었는데-

 정말 이상해. 지금은 아무도 없어.


 가만히 서 있으니 등뒤로 더운 바람이 불어온다. 습기도 섞여있어 썩 쾌적하지 못하다. 그래도 언제나와 같이 난간에 기대어 도시락 통을 열었다. 아침밥과 비슷한 간단한 점심메뉴. 좀 질리는 감도 있었지만 불평할 기분은 들지 않았다. 벌써 더위를 먹어버린건지 수면위로 떠오르는 지난 일만이 드문드문 감정을 잡아챘다.


 배구부를 시작한 1학년 초에는 그 사람과 단둘이 있으면 동경심에 가슴이 설렛었다. 조금 유치하지만, 잡을 수 없는 노란 별을 몰래 훔친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짜릿한 두근거림이란걸 알았다. 마치 나쁜 짓을 한 어린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같이 있는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2학기 쯤에는 가져서는 안 될 묘한 감정이 조금씩 피어 올랐다. 저도 모르는새 싹이 튼 해바라기가 쑥쑥 자라는 중이었기에. 그때는 정말 꽃망울이 지면 어쩌지, 정말 그를 좋아하는 것이면 어쩌지 하고 남몰래 속앓이를 했었더랬다. 물론 그 사람은 당연히 모르겠지만.

 2학년에 올라와서는 대화가 많은 날도 적은 날도, 조금 싸우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그저 같이 있을 수 있음에 나는 만족했다. 이미 큰 꽃봉오리 하나가 생겨버리고 만 뒤였지만 피우지만 않는다면, 그래, 내가 나를 인정하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그 평화로운 행복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냥 그렇게 계속 평화로웠으면 좋았을걸.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다시 숨이 갑갑해졌다. 이번엔 체하기라도 한걸까. 파란 도시락 뚜껑 위에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직 반 이상이 남아있었지만 입맛이 써서 더 먹진 못할 것 같다. 아아, 시원한 물이나 한 잔 들이켰으면.



***



 와글와글. 하교길이 시끄럽다. 청소하는 소리, 말소리 온갖 잡음이 곳곳에 뒤섞여있다.
 


 "우리 축구할건데 바로 집 갈꺼냐?"


  "아니, 학원있어."


  "에헤이, 빼지말고..."



  "...그렇게 재밌었어? 다 보고 잘 걸!"


  "그렇다니까~ 어제 드라마 반전이 완전..."



  "...걔는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러게 걔가 너무했네."


  "그지? 그래서 내가..."



 뭐가 그렇게 재밌고, 뭐가 그렇게 할 말들이 많은걸까.

 다들 나만 두고 즐거워보여.


 넘쳐나는 하굣길 무리를 뒤로하고 잰 걸음으로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또 다시 역순행이었다. 체육관 모퉁이를 돌아서서야 귓가를 울리던 소리는 힘을 잃었다. 인파를 헤치고 걸어온 길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해봤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그저 빨리 집에 갔으면 하는 마음뿐. 벌써 지쳐버린 몸뚱이를 질질 이끌고 환복을 하기 위해 다시 탈의실로 향했다.



***


  

  "팡-"



 등 뒤로 주르륵 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진다. 절어있는 온몸이 눅눅하다. 팔, 바닥, 벽. 여기저기로 공이 튕겨나는 소리는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분명 괜찮을 것...



  "아카아시-!"


  '툭-'


  "...."



 참 볼품없게도, 어쩌면 이렇게 힘없는 소리가. 한창 연습경기가 진행중이던 차에 체육관 안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원인제공자는 놀랍게도 나였다. 코치님으로 부터 곧바로 교체사인이 들어왔다.


 잠시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매니저들이 다가와 조퇴를 권했다. 평소같았으면 괜찮다고 거절했을테지만 오늘은 정말 지쳐버렸기에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죄송합니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그래. 몸관리 잘하고."

  "네."


 부원들에게도 짤막한 인사를 마치고 얼른 자리를 벗어났다. 일찍 나왔다해도 시간이 시간인지라 학교는 조용했다. 위를 올려다보니 회색빛 하늘에 공기도 찝찝한게 어쩌면 비가 올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샤워는 집에 가서 하는게 나을 것 같다.


  '달칵.'


 가방을 챙겨들고 사물함 문을 닫았다. 비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창문을 바라보니 착각인듯 물방울은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시원하게 내렸으면 싶다. 답답함이 싹 씻겨나가도록.

 아침부터 갑갑하던 숨은 점점 정도가 심해져 이제 끈으로 폐를 조이는 것마냥 꽉 막혀왔다. 나는 왜 그랬을까. 나로써도 이해할 수 없다. 단지 그냥, 정말 있는 줄 알았다. 그 순간 그 자리에 그 사람이. 있을리가 없는데도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어쩔 도리 없이 실소가 터진다. 여태 계속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러는 이유가 뭔지. 차라리 그때 그랬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훌훌 털어버렸으면 좋았을텐데. 이제서야 좀 빈자리를 느끼는 걸까. 그렇게 매정하게 굴어놓고 이제와서야.


 문득 충동이 인다. 바로 옆자리의 사물함. 그가 뭘 남겨뒀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꾹 잠겨있어 열지 못했는데 갑자기 안이 궁금해졌다. 이것저것 맞춰보면 금세 열릴 것만 같다. 단순한 사람인걸 고작 네자리 비밀번호 하나 못 찾을까.  



 1111. 아니네.

 
 1234. 아니야.


 그 사람의 전화번호.


 그 사람의 생일.


 그 사람의 등번호.




 아니네, 다 아니야.




 제멋대로인 사람. 비밀번호도 주인을 닮았는지 열리지가 않는다. 열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린 내 잘못이었다. 쓸데없는 실망만 더 늘었다.


  1205.


 역시 아니네.
 
 바로 가방을 들쳐메고 탈의실을 벗어났다. 마지막은 해보지말걸 그랬다. 생각보다 더 비참해.



***




  "모두에게 전할 말이 있다."


 부활동 시작시간이 되어 코치님이 모두를 불러모았다. 얼마나 중요한 얘기를 하시려는건지 표정이 진지하다 못해 좀 심각하다. 이런 때에 보쿠토씨는 지각. 뭘하고 있는 건지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생각해보니 오늘은 쉬는시간에도, 점심때도 보이질 않았었다. 아픈건지 귀찮더라도 반에 찾아가 볼걸 그랬나 조금 후회가 든다.


  "다름이 아니라 보쿠토에 관한 이야기다."


 코치님이 천천히 운을 떼었다. 보쿠토씨에 관한 이야기라니 그 튼튼한 사람이 정말 어디 아프기라도 한걸까.


  "다들 너무 놀라지말고 들어줬으면 한다."

  "...."

  "...지난 밤, 보쿠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한참을 뜸을 들이던 코치님의 말이 끝나자 사방에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교통사고라니. 말도 안되는 소리.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런 엄청난 말을 믿을수 있을리가 없다.


  "조용-. 보호자분의 말에 따르면 아이를 대신해 달리는 차에 치였다고 한다."

  "...."

  "경미한 부상으로 끝나면 좋았겠지만... 그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듯 하다..."


 이야기를 전하는 코치님의 말꼬리가 점점 흐려졌다. 주변의 공기도 더욱 무거워졌다. 장난따위가 아니었다. 정말 현실이었다. 보쿠토씨는 정말 사고를 당한거야.


  "얼마나... 심각한건가요."


 목소리가 절로 떨려나왔다. 손은 물론이고 팔, 다리까지 온몸이 떨리는 것만 같다.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게 좋을 것 같다.."




***


 정신을 차려보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당연히 우산은 없으니 온몸은 흠뻑 젖어버린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아직 천장없는 하늘 아래를 걷고 있다. 바로 집으로 가서 쉬려 했거늘 발걸음은 자꾸 이상한 곳을 향한다.


 아아. 이대로 가다보면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아는데, 흐물흐물 터져버리고 말 것이란 걸 아는데, 그러니까 그곳엔 정말 가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어쩔 수 없는 나는 축축한 다리를 옮기고 있다.



***



 병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코치님과 보쿠토씨의 어머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부원들을 대표해서 부주장의 자격으로 이곳, 보쿠토씨가 입원한 병원에 와 있다. 


 연신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보였지만 거리가 멀고 소리가 작아 무슨 내용인지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병원 특유의 소독약 냄새에 머리가 조금 아프다. 사방이 하얀 벽으로 가로막혀 몸도 마음도 갑갑하기 짝이 없다. 



 보쿠토씨, 이런 꽉 막힌 곳에 계시는 건가요.


 저도 이렇게 답답한데 당신같이 활발한 사람이 어떻게 버티고 계신거예요.
 


 상태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의사선생님의 통보에 보쿠토씨와의 면회는 결국 무산되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 한 번도 못 보고 돌아가야 했다.


 빨갛게 지는 해를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난생처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종교는 없었지만 그저 마음이 무거워서,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끝나버릴 것만 같아서, 그냥 그렇게 한없이 바랬다. 




 빨리 일어나요, 제발.



***



 어느새 벌써 차가운 유리문 앞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무서우리 만치 조용하다. 조심스레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팔을 들어 문에 갖다대었다. 홀딱 젖은 몸인데도 어쩐지 곳곳에서 열기가 오른다. 심장뛰는 소리도 너무 크게들려와 점점 머리속이 하얘졌다. 


 이 문 하나를 열기가 그 무엇보다 겁이 난다.



***



 보쿠토씨가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 뒤. 결국 그 사람은 버티지 못했다. 답답한 병실이 미치도록 싫었나봐. 모든걸 남기고 정말 별이 되버리고 말았다. 내안의 해바라기도 봉오리째로 시들어버렸다. 한순간에 나를 영영 혼자두고 사라져 버렸다. 


 가족도, 친척도, 연인도 그 무엇도 아닌 그저 학교 선후배 사이의 관계였기에 그 사람의 죽음은 말로써 전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표정을 지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확한 소식을 듣게 된 것은 이미 장례절차가 시작되고 난 후 였고, 난 그저 넋이 나간 인형이 되어 장례식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나 외에도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많았다. 같이 간 부원들, 선생님들도 뜨거운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모두의 눈물을 받기에 충분히 밝고 멋진사람이었기에. 하지만 어째선지 나는 눈물 한방울 흘리지 못했다. 또 언제나의 무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뿐. 


 주변 사람들은 얼마나 충격이 크면 그러겠냐며 되려 나를 걱정해왔지만 놀랄만큼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가슴의 통증도 없었다. 혹시 뇌가 멈춰버린걸까. 인간으로서의 존재가 무책임할만큼 모든게 괜찮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그 사람은 화장되어 납골당에 들어갔다. 그 큰 사람이 살았던 수 많은 흔적이 한 줌 가루가 되어 작은 정사각형 공간안에 남겨졌다. 초라했다. 그래서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같이 가자는 권유에도 나중에 혼자 가고 싶다며 찾지 않았다. 머리가 텅 비어버린 것처럼 허전했지만 내 생활은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었기에 굳이 그 초라함을 찾고 싶지 않았다. 


 다 괜찮았다.






 정말 괜찮았다.


 정말 괜찮은 줄 알았다.



***




  "...."



 투명한 유리 너머로 하얀 도자기 앞에 놓인 그의 개구진 얼굴이 보였다. 지난 시합에서 이기고 찍은 사진인 것 같았다. 해맑은 그 모습에 한없이 눈이 부신다. 순수함을 더럽힐까 한 걸음 이상은 차마 다가갈 수가 없다.



  "...보쿠토씨, 나 이제야 왔어요."


  "...."


  "늦게 와서 죄송해요. 많이 섭섭하셨나요... "


  "...."


  "너무... 삐지지는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



 들려오는 대답 한마디 없었지만 꾹 참고 말을 이었다. 느릿한 목소리가 덜덜 떨려가는 게 느껴졌다.



  "원래는... 원래는 정말 안 오려고 했어요. 너무 초라하잖아요.. 이렇게 밖에 남지 않았다는게."



 거짓말이다. 초라한 건 그가 아니라 나였다. 지금도 내가 너무 초라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냥 왔어요."


  "...."


  "나도.. 잘 모르겠는데...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나봐."



 울컥 목이 메였다. 한마디 한마디가 뚝뚝 끊어졌다. 당장에라도 쏟아질듯 눈 앞이 일렁거렸다. 



  "나는.. 잘 지냈어요."



 아니야. 가슴이 미어질 것 같았어요.



  "밥도 잘 먹고, 잠도 잘잤어."



 거짓말이야. 너무 아파서 마음껏 울지도 못했어요.



  "학교도 잘 다니고, 수업도.. 열심히 들었어요."


  

 다 거짓말이야. 가슴이 갈기갈기 찢어질 것 같았어요.



  "배구도.. 부활동도 열심히 하고..."



 나는 지금 숨쉬는 것조차 너무 벅차요..



  "...."



 결국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늘에서야, 이렇게 오롯이 그 앞에 서서야 드디어 모든게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가슴에 너무 큰 통증이 일어서 울음소리도 잘 나질 않았다.




 왜 그랬어요.



 그냥 구하지 말지그랬어요.



 이렇게 없어져 버릴바에야 구하지 말지그랬어.




 내가 이렇게 울고 있잖아.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



 당신이 너무 원망스러워.


 


 죽지말아요.



 와서 나 좀 안아줘.



 추워서, 너무 추워서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아.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눈물이 흘러내렸다. 슬퍼서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렇게 가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나한테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좋아한다고 고백도 못했는데... 이러면 안되는 거잖아.





  '아카아시, 이것 봐!'


  '그게 뭔가요. 에이스의.. 마음가짐..?"


  '어때? 완전 멋있지?'


  '그런건 아무도 안 입어요.'


  '에에- 이렇게 멋있는데!'



...



  '그럼 내가 첫 후배 시켜줄께.'


  '얼마나 부려먹으시려구요.'


  '아니야, 엄청 잘해주겠다는 뜻이야!'


  '그런가요.'



...



  '아카아시!'



...



  '아카아시-!'

  














 아아, 보쿠토씨.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_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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