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캐붕주의

※동화풍 판타지같은 느낌이 가미된 수인물입니다. 

   - 쿠로오: 흑서벌, 고양이과 수인 / 츠키시마: 인간 

   - 보쿠토: 부엉이 수인 / 아카아시: 올빼미 수인

※약 5,500자 분량입니다.











***




  보쿠토네가 사온 늦은 점심을 허겁지겁 해치우고 빵빵하게 배를 채운 넷은 그제야 서로 통성명을 나눴다. 사실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어째선지 츠키시마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딱히 통성명이라고 하기도 뭐했지만 츠키시마는 완전한 초면이었으니 자기소개는 당연한 순서였다.



  "나보다 어리니까 말 놔도 괜찮지? '아카아시 케이지'야."



 아카아시는 살풋 휘어지는 눈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동작. 자세. 말투 하나하나까지 차분하고 단정한 것이 쿠로오씨의 친구라기엔 너무 정상적이라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건지가 의문스러웠다. 몸 곳곳에 배어있는 고고함 역시 츠키시마가 혹시 저처럼 납치(?)라도 당한 건 아닌가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보쿠토 코타로'! 편한대로 불러."



 반면에 보쿠토는 인사소리부터 참 우렁찬 남자였다. 키도 큰데다 덩치도 꽤 있어서 지극히 평균일 아카아시가 작아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보기와 달리 성격은 무게있지 못해서 유치한 장난끼를 가진 쿠로오보다도 애같은 면이 많았다. 


 후식으로 과일을 먹고 있는 지금도 입가에 묻은 과즙을 아카아시가 손수 닦아주고 있었다. 꼬마아이를 돌보는 것 같은 그런 자애로운 엄마의 눈빛으로 말이다.



  "..츳키?"


  "아.." 



 그 모습을 보며 잠시 멍을 때리던 츠키시마가 쿠로오의 부름에 말을 이었다. 멀쩡한 성인 남성이 우쭈쭈하고 입을 닦이고 있었지만 하루이틀의 일이 아닌 듯, 쿠로오는 이미 익숙함을 넘어 이젠 신경쓸 가치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 '츠키시마 케이' 입니다. 쿠로오씨한테 얘기 들었어요."


  "쿠로오가? 어이, 고양이씨. 또 무슨 욕을 하셨나~?"


  "별 말 안했거든-"


  "웃기시네."


  "왜 또 시비야."


  "둘 다 그만하세요. 만날때마다 애도 아니고."



 아니요. 애가 맞는 것 같습니다. 츠키시마는 아카아시가 둘의 시덥잖은 말다툼을 말리는 것을 보며 결론을 지었다. 앞으로의 생활이 편하려면 어딜가든 가장 실세인 쪽에 붙어야 하는 법. 냉철한 우리의 츠키시마는 지성인답게 아카아시의 앞으로 과자그릇을 슬쩍 밀어두었다.



  "쯧, 그래서 저 짐들은 다 뭐야? 어디 이민가?"



 쿠로오가 현관 앞에 쌓인 커다란 짐덩이들을 보며 말을 꺼냈다.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바리바리 싸들고 온 것들이었는데, 타인의 일에 기본적으로 무관심한 츠키시마도 신경쓰일 정도 였으니 저 많은 짐을 두 사람이서 어떻게 매고 온건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음, 편지 안 읽어보셨어요?"


  "편지? 너희들 온다는 얘기말고는 아무것도 안 적혀있었는데?" 


  "네..?"



 아카아시가 짐짓 놀란 눈치로 되물어왔다.



  "아니, 애초에 '간다.' 한마디 뿐이었다고. 봉투는 네 글씨긴 했다만 정말 아카아시 네가 쓴 거 맞아?"


  "....."


  "히익..!"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내뱉은 보쿠토는 검은 오오라를 풍기기 시작한 아카아시를 피해 츠키시마의 뒤로 달아났다. 본의아니게 아카아시의 노기어린 표정을 정면에서 마주하게 된 츠키시마만 등뒤로 소름이 쭈뼛 돋았다.



  "..보쿠토씨, 분명 편지 제대로 보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아니.. 아카아시,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이리와서 똑바로 얘기하세요."


  

  쭈뼛쭈뼛 다시 아카아시의 옆에 앉은 보쿠토는 벌써부터 축 처진 눈으로 제 사정을 고했다. 발랄하게 솟아있던 머리칼도 같이 축 처져서 머리카락에도 의식이 있는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나도 잘 보내려고 했는데..."


  "네."


  "..그래, 그.. 그 바람이 불어서..!"


  "바람에 불어서 날아간 편지가 신기하게도 내용물만 바뀌어서 도착했다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보쿠토씨."


  '흠칫.'


  "이걸로 거짓말을 벌써 두 번이나 하셨네요. 약속은 잊지 않으셨겠죠."


  "그건 안돼! 사실대로 말할테니까.. 응? 아카아시이-"


 

 화가 났음에도 차분하게 할 말은 다하는 아카아시와 그의 팔에 매달려 안절부절 못하는 보쿠토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치 흥미진진한 한 편의 희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에 맞춰 츠키시마의 옆에는 이미 관람객 한 분이 와작와작 쿠키를 씹으며 만족스러워하는 중이셨다.



  "마직막 기회를 드릴게요, 보쿠토씨. 이번엔 똑바로 얘기해주세요."


  "응응. 그러니까... 편지 안에 궁금해서 그랬어! 진짜 잠깐만 보고 다시 넣으려고 했는데 주스 쏟아서 다 번져버렸어!"


 

 목소리도 참 크기도 하지. 보통 자기 잘못을 고백할 때 저리 당당하게 말하던가. 츠키시마는 그런 보쿠토를 보며 그가 쿠로오의 친구로 손색이 없는 사람이란 걸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하아, 결국은 뜯어보셨단 얘기네요."


  "잘못했어... 그래도, 아카아시가 나한테도 쓴 적 없는 편지를 쿠로오 같은 거한테 써주니까 그렇잖아!"


  "아, 왜 또 가만히있는 날 걸고 넘어져!"



 보쿠토의 '같은 거' 발언에 재밌게 구경하던 쿠로오가 발끈했다. 이를 본 츠키시마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 것은 덤이었다.



  "지금 저한테 화내시는 건가요?"


  "아..아니 그건 아니고.."



 울상인 보쿠토 뒤로 없던 꼬리가 내려앉는게 보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카아시의 능숙한 조련능력 덕분이었다.



  "하아, 보쿠토씨."


  "응?"


  "그래서 편지엔 뭐라고 써있었나요."


  "집 없어져서 여기서 산다고.."



 츠키시마는 제 귀를 의심할 만한 내용이 들려왔지만 둘의 분위기가, 정확히는 아카아시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이는 쿠로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보쿠토씨가 질투할만한 내용이 그중에 한 줄이라도 있었나요."


  "아니.."


  "그럼 섭섭한 건 이제 없으시겠네요."


  "응."


  "그래요. 이번엔 제가 섭섭할 차례네요."


  "아카아시..?"


 

 아카아시의 입술위로 희미한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를 바라보던 세 사람의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기분이란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리라.



  "보쿠토씨, 제가 그렇게 헤픈 사람으로 보이셨나요. 그런 쓸데없는 질투를 하실만큼?"


  "...."


  "아니면 제가 쿠로오씨를 좋아한다던가 그런 끔찍한 상상이라도 하신건가요? 농담이라도 그런 말은 하지마세요. 정말 소름돋으니까요."


  "어이어이.."


  "거짓말은 왜 또 하신건가요. 처음부터 사실대로 얘기하셨으면 좋았을걸. 저랑 그렇게 떨어져 있고 싶으셨어요?"


  "아냐, 그럴리가 없잖아!"


  "보쿠토씨가 그렇지 않다고 하셔도 약속은 약속이예요. 2주동안 스킨십 절대 안할 거니까요."


  "안돼~!"



 보쿠토의 울부짖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퍼졌다. 누가보면 세상이 무너진줄 알 만큼 실의에 찬 울부짖음이었다. 츠키시마는 스킨십하나 금지당한 정도로 왜 저렇게까지 반응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어 의아해 했지만 이번에도 쿠로오는 그저 고소하다는 얼굴로 강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스킨십이라니.. 금지씩이나 할 만큼 스킨십이 잦으신 건가요? 남자 두 분이서 특이하시네요."



 호기심을 숨기지 못한 츠키시마 순수한 의구심만을 담아 말을 던졌다.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라기보다는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지만 곧 아카아시로 부터 친절한 설명이 날아들었다. 매우 간단하지만 충격적인 한마디가.


 

  "아, 얘기 못들었어? 일단은 보쿠토씨랑 사귀는 사이라."


  "..네?"


  "쿠로오씨, 정말 아무 얘기도 안 하셨나 보네요. 츠키시마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렸잖아요."


  "그러게 내가 별말 안했다고 했잖아."


  "아카아시- 내가 잘못했어~"



 굳어버린 츠키시마와 만담중인 쿠로오와 아카아시, 찡찡대는 보쿠토까지. 쿠로오네 거실은 결국 대화의 논점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만큼 몰아치는 혼란속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는 앞으로 츠키시마가 질리도록 보게될 지극히 평범한 풍경중 하나가 될 터였다.




***




 

  "그러니까 요는 우리집에서 두 달은 같이 살아야 된다는 얘기잖아."


  "역시. 어느 분이랑 다르게 이해가 빠르시네요."


  "아카아시.. 그거 내 얘기는 아니지?"


  "그럼요. 혹시 찔리세요?"


  "아니..!"



 츠키시마가 멍해있는 사이 쿠로와와 아카아시 사이에는 벌써 이야기가 끝나있었다.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동거중이던 집에 문제가 생겨 부득이하게 신세를 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사실 부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통보에 가까웠지만 오래 알고 지냈던 사이이니만큼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보였다.


 잠시후, 쿠로오의 허락이 떨어지자 둘은 빠르게 짐을 챙겨 정해준 방으로 사라졌다. 그 수북한 짐들을 다 풀려면 지금부터 서둘러도 모자랄 터였다.



  "쿠로오씨."


  "응?"



 보쿠토와 아카아시가 들어가자 가만히 입을 닫고 있던 츠키시마가 그제야 쿠로오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여기는 동성끼리의 연애도 자유롭나요?"



 역시 남자끼리의 사귐이란게 생각보다 충격이 컸는지도 모르겠다.



  "어.. 그렇게 흔하지는 않지만 인간세계처럼 안좋은 인식이나 편견이 있는 건 아니야. 한마디로 자유로운 편?"


  "그런가요."


  "어... 츳키 충격이 클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문화의 차이일 뿐이고..."


  "그러게요. 정말 충격이 크네요."


 

 덜컹. 츠키시마의 발언에 쿠로오의 어딘가가 흠칫 내려앉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말도 안 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푹. 이번엔 여기저기 찔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쿠로오의 오른손은 이미 충격에 휩싸인 제 가슴을 붙잡으러 올라간 후였다.



  "전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요."



 와르르. 솔직하고 담담하게 어쩌면 조금은 화난듯 말을 이어가는 츠키시마를 보며 쿠로오의 머리속 한 구석에 있던 수많은 망상들이 무너져 내렸다. 멋쟁이 쿠로오씨와 귀여운 케이군과의 이챠이챠*한 러브스토리가 크나큰 상처를 받아버리고 만 것이었다. 



  "쿠로오씨도 같은 생각이시죠?"


  "어..? ㅁ..뭐가..?"


  "아카아시씨가 너무 아깝잖아요."


  "...응?"



 예상과 크게 빗나간 츠키시마의 대답 덕에 쿠로오의 사고회로가 2차 혼란을 맞았다. 아카아시가 아깝다니? 둘다 남자라서 싫다는게 아니었어?



  "아니, 그렇잖아요. 아카아시씨, 여기 도착해서 한숨쉬고 화내는 모습밖에 못 봤다구요."


  "...."


  "보쿠토씨한테 실례지만 아카아시씨가 어린애 어리광 받아주는 걸로 밖에 안 보여요."


  "...."


  "그런데 연인사이라니.. 아카아시씨가 불쌍해요."



 아아, 역시 똑똑하고 마음씨도 착한 우리 츳키. 열린 사고방식까지 더할나위가 없어. 쿠로오는 다시 행복의 길이 열렸음에 안심하며 철렁했던 마음을 추슬렀다. 하마터면 까마득한 미궁속에 빠져 영영 나오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 그러네. 아카아시가 아까워도 한참 아깝지!"


  "역시 그렇죠? 아, 아무리 그래도 쿠로오씨 친구분이신데 기분 나쁘셨나요?"


  "응? 아냐아냐. 전혀 괜찮아. 맞는 말이잖아, 큭큭."


  "그래도 너무 좋아하시는 거 아니예요..?"


  "안 좋을게 뭐가 있어. 우리 츳키가 날 안 싫어한다는데-!"


  "네에? 그건 또 뭔 소리예요?"


  "하하, 그런게 있어."



 이렇게 쿠로오의 상쾌한 표정을 끝으로 부엉이네 가출소동은 대충 일단락되었다. 점심먹고 특별히 한 건 없었지만 창밖에는 벌써 노을이 지고 있었다. 환하게 들어오는 주홍빛이 참 평화로웠다. 


 이제 내일부터는 보쿠토와 아카아시까지 더해져 본격적인 새 동거라이프가 시작될 터였다. 츠키시마는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앞섰지만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같이 신세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저 오늘밤 조용히 잘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이었다.













_continued






이챠이챠*: いちゃいちゃ. 남녀가 서로 희롱하며 놀고 있는 모습. (나루O의 카카시센세를 좋아하는 분이시라면 잘 아시리라고 믿습니다! 이 단어가 너무 잘어울려서 우리말로 대체하지 않고 그냥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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