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4,000자 분량입니다. 이번편은 좀 짧아요.








***



  "츳키~ 저것도."

  "....자요."

  "음~ 츳키가 줘서 두배는 더 맛있는 것 같아♡"

  "빨리 먹기나해요."

  "아카아시, 나도 먹여줘."
  "하아-"


 그렇다. 지금은 즐거운 저녁시간. 나란히 테이블에 모여 앉은 네 사람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한 가지 문제라면 보쿠토의 앙탈이이었는데, 쿠로오가 두 손에 크게 붕대를 감은채 츠키시마가 떠먹여주는 밥을 뿌듯하게 받아 먹고 있으니 이를 본 보쿠토가 아카아시에게 자신도 떠먹여달라고 떼를 부리고 있는 정도의 사소한 일이었다.

 사건 경위를 설명하자면 쿠로오가 붕대를 감게 된 것은 오전 소풍 도중 라즈베리를 따다가 생긴 상처 때문이었다. 여기저기 손근처가 전부 긁히긴 했어도 가벼운 긁힘이라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처치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츠키시마가 미안한 마음에 예쁘게 치료를 해주려다 덩치에 안맞게 엄살을 부리는 쿠로오 때문에 조금 변심했던것 뿐이다.

 불편하라고 두껍게 미라를 만들어 놨던 참이었으나 밥이나 떠먹여주고 결국 피해를 보고 있는 쪽은 츠키시마였다. 능글맞은 검은 고양이씨는 자신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줄 아는 현명한 남자였다.


  "아~ 잘먹었다."
  "드디어 끝인가.."


 밥을 다 먹은 쿠로오를 시작으로 하나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식탁에 남겨진 반찬그릇들이 모두 싹싹 비워져서 설거지를 안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성인 남자 네 명이 먹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밥을 다 먹어버렸어.. 아카아시가 떠먹여줄게 없어...(시무룩)"
  "이따가 과일드릴께요."
  "먹여줄거야?(반짝반짝)"
  "포크도 드릴께요."

  "아카아시이..."


 오늘 설거지 당번은 아카아시였다. 쿠로오와 보쿠토가 거실로 나가고 츠키시마만 잠시 남아서 뒷정리를 도왔다. 싱크대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지내는 거 불편하진 않아?"
  "그럭저럭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네. 우리까지 있어서 더 신경쓰이지 않을까하고."
  "음...쿠로오씨랑 둘이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을까요?"
  "쿡쿡, 그럴지도."
  "확실히 전보단 스킨십이 줄긴했어요."
  "스킨십?"


 아카아시가 설거지하던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춰왔다. 쿠로오와 츠키시마 관계에 스킨십이란 단어가 나올줄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쿠로오가 츠키시마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요 몇일 같이 지내본 결과 스킨십이라고 칭할만한 행동은 그다지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쿠로오씨가 스킨십을 자주 했어?"
  "네.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우리가 없었을 때, 그러니까 둘만 있었던 때 스킨십을 했었던 것이라고 하면 그래도 일단 이해는 간다. 그 사람 성격에 부끄럼 따위 탈 리가 없었으니, 아마도 츠키시마를 배려한 것이었겠지.


  "그렇구나.. 음..."
  "아카아시씨?"
  "스킨십, 츠키시마한테 허락은 맡고 한 거겠지?"
  "허락이요? 그런거 물어보고 할 사람이던가요, 쿠로오씨가."
  "늘 갑작스러워서 대응도 잘 못 하겠어요."
  "뭐..제가 익숙하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한 번은 다리가 후들거려서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었어요."


 츠키시마의 증언을 들은 아카아시는 문득 이 어린양의 신변에 위협이 생겼음을 감지했다. 아니 이미 위협을 받아왔음이 틀림없다. 보쿠토상과 제가 오기 전까지 쿠로오씨와의 뭔가 불공정한 계약이라도 있었던 건 아닐까.


  "츠키시마. 쿠로오씨가 협박같은 건 안했어? 폭력을 행사했다던지..윽박을 지른다던지.. 읏!"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쿠로오씨? 언제 오셨어요. 이제 거의 다 끝나가는데."


 소리소문없이 다가온 쿠로오의 딱밤에 아카아시의 입에서 작은 감탄사가 새어나왔다. 아프게 때린 것은 아니었지만 짐짓 놀란 마음에 튀어나온 목소리였다.



  "야! 우리 아카아시 때리지마!"

  "얘가 츳키 앞에서 이상한 소리하니까 그러잖아!"

  "아카아시는 안 그러거든?"

  "가만히 있다 범죄자 될 뻔 했거든?"

  "범죄자 맞잖아?"

  "내가 왜 범죄자야!!"


 

 뒤따라 와 있던 기사도정신 투철한 보쿠토 덕분에 둘 사이에 쓸데없는 전쟁이 발발했다.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 으르렁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역시 저 두 사람은 정신연령이 5살짜리 어린이 수준이 틀림없다고 츠키시마는 생각했다.



  "츠키시마, 이쪽으로."

  

 

 둘이 한창 투닥거리는 것을 두고, 어느새 설거지를 마친 아카아시가 과일을 준비해 츠키시마를 거실로 불렀다. 저런 말싸움 정도야 흔한 일이었으니 별로 놀라울 것도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츠키시마가 과연 이 집에서 계속 지내도 괜찮은가에 대해서 였다.



  "그래서 아까 하던 얘기 말인데."

  "네. 얘기하세요."



 아카아시가 빨간 사과껍질을 깎으며 말을 이었다. 



  "스킨십은 주로 어떤 거였어?."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응."

  "가장 많이 한 거라면 머리 쓰다듬는 게 제일."



 머리쓰다듬기라.. 빈도수로 따지면 확실히 제일 많을지도 모르겠다. 아카아시는 쿠로오상 답지않게 순수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며 탐문을 계속했다.



  "다른 건?"

  "갑자기 어깨동무를 한다던지, 손을 잡는다던지."

  "흠.."

  "아무 맥락없이 꽉 끌어안고 가시기도 했구요."

  "그럼 다리가 후들거렸었다는 건?"

  "아. 그건 갑자기 귀이개를 들고오셔서 귀지를 파드렸는데 그대로 자버리셔서요. 그냥 내버려두기도 그렇고, 그날따라 피곤해보이시길래."

  "...."



 예상과는 전혀 다른 츠키시마의 발언에 아카아시의 눈에 또 다른 의문이 서렸다. 츠키시마가 거짓말을 할리도 없고, 뭔가 부끄러운 일을 했다면 숨기려고 얼굴에라도 수치심이 드러났을텐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엔 어딘가 찝찝한 감이 있었다. 제가 알던 쿠로오씨가 좋아하는 상대와 함께 그것도 한 지붕아래에서 몇날몇일을 정말 도라도 닦았다는 말인가? 보쿠토씨가 고기를 안먹겠다는 얘기만큼이나 신빙성이 없었다.


 

  "아카아시상? 뭔가 문제라도.."

  "응? 아냐. 잠시 생각을 좀. 여기 사과."

  "네."

  "아카아시, 나도 사과-!"



 이제 싸울만큼 다 싸운 모양인지 보쿠토와 쿠로오가 거실로 복귀했다. 아카아시는 보쿠토에게 앙증맞은 포크를 손에 쥐어주고 의뭉스런 눈초리로 소파에 앉는 쿠로오를 주시했다.



  "뭐, 뭐야.. 왜 그렇게 봐."

  "쿠로오씨."

  "왜?"

  "실망입니다."



 아카아시가 사과를 아삭아삭 씹으며 차가운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그정도 밖에 안되는 분이셨다니.."

  "나 뭐 잘못 한거야?"

  "하셨나보죠."

  "제가 알던 쿠로오상은 좀 더 배포가 크던 분이셨는데.."

  "아니, 이유라도 좀.."

  "지금은 이빨없는 고양이꼴이시네요."

  "어이, 보쿠토. 오늘따라 네 애인님 입이 험하시다고..?"

  "머?(우물우물)"



 쿠로오의 표정이 당황으로 얼룩졌다. 츠키시마랑 무슨 얘기를 나눴길래 갑자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보쿠토는 두 볼 빵빵하게 사과를 채워넣고 있었다. 다람쥐인줄 알았다)



  "보쿠토씨. 저흰 먼저 들어가죠."



 제 할 말을 마친 아카아시가 미련없이 등을 돌렸다. 벌써 방에 들어가기엔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나 사가 아지 더 머그꺼대?(해석: 나 사과 아직 더 먹을건데?)"

  "새로 하나 씻어드릴게요."

  "아라어!(해석: 알았어!)"

  "츠키시마, 잘 자."

  "네, 아카아시씨도 안녕히 주무세요."



 탁. 아카아시와 보쿠토네 방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츠키시마와 함께 남겨진 쿠로오만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다 드셨어요?"

  "어? 어.."

  "그럼 포크 주세요. 제가 치우고 들어 갈께요."

  "츳키도 들어가게?"

  "네. 오랜만에 책도 좀 읽고 싶고."



 아카아시네를 따라 츳키도 제 방에 들어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단둘이 좀 같이 있어보나 했더니 이미 물건너간 꿈이었다.



  "여기서 읽으면 안돼?"

  "푹신한 침대가 좋아요."

  "나한테 기대고 읽어도 되는데..!"

  "불편해서 싫어요."

  "츳키..."

  "쿠로오상도 일찍 들어가시면 되겠네요. 저는 이만."



 쿠로오는 멀어져가는 츠키시마의 모습을 보며 찔끔 마른 눈물을 훔쳤다. 괜히 먼저 일을 벌이고 들어가버린 아카아시가 원망스러울 따름이었다. 







_continued

[ 06. 안심이와 불안이 ]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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