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대사끼리 띄움없이 써봤는데 읽기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

※ 약 8,000자 분량입니다.









 01_월컴 투 뮌도랜드






  "케이-"

  "...."

  "케이- 일어나봐."



 쿠로오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자고있는 제 애인님을 흔들어 깨웠다. 정말 꼼짝없이 누워있길래 '죽었나'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지만 다행히도 숨은 잘 쉬고 있었다.



  "....(꿈틀)"

  "케이, 얼른 눈 떠봐. 괜찮아?"



 흔들어 깨운지 얼마 되지 않아 금세 반응이 왔다. 이렇게 젖은 채로 더 누워 있다간 감기에 걸릴지도 몰랐다.



  "...쿠로오상..?"

  "응, 나야."

  "저 왜 누워있어요..?"

  "음....떠내려와서...?"

  "떠내려와요..?"



 쿠로오의 알 수 없는 대답에 끙하고 상체를 일으킨 츠키시마는 마찬가지로 눈 앞에 펼쳐진 정글을 발견했다. 



  "이게 뭐예요..?"

  "....정글?"

  "아직 꿈속인건가....아야!"

  "아프지? 꿈 아니야."

  "....(찌릿)."



 쿠로오는 애써 현실을 부정하려는 츠키시마를 다시 현실로 빠르게 복귀시켜 주었다. 짖궃은 방법탓에 매정한 눈초리를 받아야 했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그 때 바다에 빠져서 정신을 잃고나서 여기까지 떠내려 온 것 같아."



 쿠로오는 지금 상황을 빠르게 설명하고 츠키시마의 이해를 도왔다. 저혼자 이미 별생각을 다 해봤으니 괜한 혼란은 주고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 여기 모래사장있는데는 한번 쭉 살펴봤는데."

  "떠내려온건 우리뿐인가봐. 보쿠토랑 아카아시는 안 보여."

  "그리고 이거 가방 두 개. 딱 케이꺼랑 내꺼만 있더라."

  "...."

  "...케이?"

  "이제 어떡해요."

  "그러게."



 하아- 처진 한숨이 둘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즐겁게 온 해외여행에서 갑자기 조난이라니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해도 맛있는 점심을 먹고 하하호호 놀고있었는데, 지금은 어딘지도 모르는 외딴섬에서 예정에도 없는 표류를 하게 생겼다.


 아무리 눈씻고 바다를 둘러봐도 주변에는 배는 커녕 비슷한 섬 하나, 육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파란물만이 펼쳐져있을 뿐이었다. 한숨이 나오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야속한 파도소리만 가득찬 조용한 정적. 잠시후 시끄러운 갈매기 소리마저 그리워질 무렵,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케이가 갑자기 고개를 푹 숙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쿠로오가 흠칫 놀라 걱정스레 말을 걸었다.



  "케이...울어?"



 쿠로오는 제 눈엔 항상 여리기만한 츠키시마였기에 이런 상황이 되니 많이 힘든가보다 생각하고 얼른 옆으로 가 안아주었다.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등을 토닥이며 이것저것 말을 뱉었다. 


 위로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것이지만 간만에 제대로 된 연상남친의 역할을 하는 것 같은 기분에 괜한 뿌듯함이 따라오는 건 덤이었다.



  "괜찮아, 뭔가 방법이 있을거야. 그쪽 숙소에서도 뭔가 조치를 취했.."

  "쿠로오상."

  "응?"



 쿠로오가 근거없는 자부심에 부풀어올라 말을 건네는 것을 가만히 듣고 있던 츠키시마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올리며 그의 말을 끊었다. 


 눈 앞에 보이는 츠키시마는 쿠로오의 예상과는 달리 빨간 눈물자국은 커녕 평소와 똑같은, 아니 어쩌면 더 의욕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로오상. 그런 불확정요소에 제 목숨을 맡길순 없어요."

  "..어?"

  "우리는 태풍에 휩쓸려 어딘지도 모르는 무인도에 조난을 당한거라구요. 날도 어두워져서 기온도 내려가고 있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구조대가 올거라는 그런 태평한 소리나 하면서 가만히 있을수는 없어요."

  "...."

  "쿠로오상, 전 아직 죽기 싫습니다."

  "...."

  "일단 가지고 있는 소지품 먼저 확인해요."



 그의 애인님은 강한 멘탈의 소유자였다. 가녀린 눈물은 무슨 잠시 스트레스로 지끈거리는 머리에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극히 이성적인 츠키시마는 조곤조곤 따져가며 쿠로오가 위로해주려 했던 말들을 차갑게 내쳤는데, 생각해서 건넨 말에 이렇게 반응하면 듣기 좀 거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작 그 말들을 듣는 당사자는 전혀 상처 받은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맹목적인 콩깍지란 무서운 법이라 새로운 츠키시마의 모습에 '멋져. 나 케이한테 다시 반한 것 같아..!♡'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뒤적뒤적)쿠로오상도 핸드폰 없어요?"

  "응. 몇번이나 뒤져봤는데 안 보여."

  "물이나 먹을 건요?"

  "500ml 생수 한 병밖에."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럼 가방에 든 건 대충 이게 다인 것 같은데..참..단촐하다."

  "그러게요."



 둘의 가방속에서 나온 것은 아직 뜯지 않은 생수 두 병과 각자 갈아입을 옷 한 벌과 수영복, 수건 그리고 여행용 목욕파우치가 전부였다. 다른 영화같은데서 보면 라이터나 칼이나 뭐 그런 서바이벌 용품들도 있고 그러더만 이건 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그도 그럴것이 담당 아저씨의 말에 따라 수영하고 씻을 것 위주로만 준비했었기에 다른게 들어있는게 이상했다. 라이터 역시 담배를 피지 않는 둘에게 있을리가 만무했다. 그나마 물 한 병이라도 넣어둔 것이 다행이었다.



  "옷 먼저 갈아입자. 이런데서 감기 걸리면 큰일이야."

  "가방이 방수라 다행이네요."

  "그러게."



 쿠로오는 입고 있던 반팔티와 바지를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어쩌피 볼 사람이라곤 츠키시마밖에 없었으니 거리낄게 없었다. 



  "저쪽 보고 갈아입어요. 그렇게 빤히 쳐다보지 말고."

  "뭐 어때~ 이미 볼 거 다 본..."

  "시끄러워요."



 옷을 다 갈아입은 쿠로오와 츠키시마는 모래사장에 옷을 펼쳐 말려두고 없는 짐을 챙겨 얌전히 가방을 싸 옆에 두었다. 옷도 갈아입었겠다, 이제 날이 완전히 깜깜해지기전에 불이라도 피워야 할 터였다. 


 라이터가 없으니 쉽게 불을 피울 수 있으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체온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보이는 저 우거진 나무들 사이에서 금방이라도 야광색 눈동자가 튀어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둘은 하얀 모래사장을 올라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살금살금 나무들 근처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그 높이에 더 두려움이 일었다. 평균키가 쿠로오의 2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힐끗 안을 들여다보니 안쪽은 벌써 깜깜한 밤이었다. 환한 낮이 아니면 쉽사리 들어가기 힘들 것 같아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석양이 지고 있었으니 그 어둠이 어떠할지 두말하면 입아팠다.



  "케이?"



 숲의 경계선에 다다르자 츠키시마는 잡고 있던 손을 슬며시 빼며 쿠로오의 등을 밀었다. 나는 여기 있을테니 얼른 다녀오라는 말이었다. 둘이서 나란히 저 기분나쁜 어둠속으로 빠져드는 건 사양이었다.



  "나 혼자가?"

  "(끄덕끄덕)"

  "같이 가면 안돼?"

  "바로 앞이잖아요. 보고 있을께요."



 마른 침을 한 번 꿀꺽 삼킨 쿠로오는 그 어둠 안으로 조금씩 발을 디뎠다. 조금 서운하긴해도 케이 혼자 보내는 것 보다야 제가 가는게 몇 배는 더 낫긴 했지만, 본능적인 두려움은 별개의 문제였다.


 불을 이어줄 땔감을 구하는 정도였더라면 앞에 나와있는 나뭇가지로 충분했겠지만 그것들 보다는 안쪽에 떨어져있는 부스러기 잎같은 것들이 불 붙이기에 더 좋을 터였기에 들어가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나지도 않는 짐승, 맹수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쿠로오상, 바나나라도 있으면 같이 가져와요.

 여기서 더 들어가란 얘기야?(울상)

 마중은 나와드릴께요.


 케이..




***




 둥그런 자갈들이 자그락자그락 밟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까만색, 회색, 흰색의 줄무늬 자갈들위로 물에 젖은 운동화가 지나갔다. 밟은 길을 따라 물의 흔적이 남아 작은 돌멩이들에 윤기가 흘렀다. 



  "(흔들흔들)보쿠토상."

  "...."

  "그만 일어나세요."

  "으응...? 아카아시?"



 축축한 운동화의 주인은 바로 아카아시였다. 아카아시는 엎어져 돌멩이와 입술을 문대고 계시는 보쿠토를 흔들어 깨웠다. 울퉁불퉁한 곳에 누워서 불편하지도 않았는지 깨어난 모습은 숙면을 취하신 얼굴이었다.



  "슬픈 소식이랑 더 슬픈 소식이랑 끔찍한 소식이 있어요. 뭐부터 들으실래요?"

  "슬픈 소식..?"

  "오늘 밤은 노숙해야될 것 같습니다."



 아카아시의 뜬금없는 노숙발언에도 아직 비몽사몽한 보쿠토는 조금 의외네 싶었을뿐 큰 반응은 없었다. 상황파악이 덜 된 모양이었다.



  "더 슬픈 소식은?"

  "더 슬픈 소식은 저녁밥도 굶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건 안돼!!"



 저녁밥얘기가 나오니 그제서야 누워있던 보쿠토가 벌떡 몸을 일으켜세웠다. 아카아시식 충격요법은 효과가 좋았다.



  "가장 끔찍한 소식은..."


 

 아카아시는 절망에 빠진 보쿠토를 내버려 두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보쿠토상이랑 단둘이 무인도에 갇혔다는 겁니다."



 아카아시의 표정이 이루말할 수 없을만큼 슬퍼보였다.




   ***





  "오, 아카아시 나 초코바 있어!"

  "저는 물 한병이 전부예요."

  "나 감자칩도 있어!"

  "그건 또 언제 챙기셨어요."

  "그리고 바나나랑 아, 빵은 내가 다 먹었나보다."

  "먹을 거 줄이시라고 했더니 이렇게 바리바리 싸 놓으셨어요? 체중조절한다고 하시더니."

  "그래도 지금은 다행이잖아."



 보쿠토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제 가방을 뽐냈다. 쿠로오네와 마찬가지로 아카아시와 보쿠토의 개인 가방 하나씩만 같이 떠밀려온 상태였는데, 아카아시는 쿠로오네와 비슷한 수준이었고 보쿠토의 가방은 유난히 빵빵하다 싶더니 간식거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보쿠토의 체중조절 계획은 물건너 가긴 했지만 물 한방울, 과자 한 조각이 아쉬운 상황에서 잘된 일이긴 했다.



  "과자는 두고 바나나는 빨리 먹는 편이 낫겠네요. 색깔이 너무.."

  "괜찮아. 원래 갈색인게 더 달아서 맛있어."



 보쿠토와 아카아시는 대충 가방을 정리하고 자갈옆 모래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모래사장은 축축하고 흙색빛을 띄었는데, 모래알의 입자또한 고와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다 뒤에 있는 나무와 바닷물사이의 거리도 가까워서, 그러니까 그나마의 모래사장의 면적도 크지않아서 둘은 나무가 있는 곳 가까이로 기대 앉아야 했다.



  "아카아시, 자."

  "잘 먹겠습니다."

  "응."



 자리에 앉은 보쿠토는 잘 익은 바나나의 껍질을 벗겨 반쪽을 아카아시에게 건넸다. 둘은 옆으로 나란히 앉아 우물우물 바나나를 먹기시작했는데, 내려가는 해와 함께 붉어지는 주변이 이 둘의 모습을 왠지 더 초라하게 보이게했다.


 정말 어쩌다 이런데서 이러고 있는지. 호기심가득 부푼 기대를 안고 탔던 배가 갑자기 난파라니. 사실 지금도 실감이 잘 나질 않는다.



  "보쿠토상,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요."



 바나나를 먹으며 아카아시가 넌지시 감정없는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평소와 별다를 바 없는 평이한 어조였지만 보쿠토는 그 안에 담긴 불안감을 캐치해냈다. 같이 지낸 햇수가 몇 년인데 이 정도도 못 알아주면 곤란했다.



  "괜찮아."

  "네?"

  "분명 나갈 수 있겠지만."

  "...."

  "못 나가도 나랑 둘이 있으면 되니까, 괜찮아."

  "(웃음)..그러네요."

  "그렇지?"



 보쿠토의 확신에 찬 목소리와 씩 웃어보이는 당당한 표정에 결국 푸스스 웃음을 흘리고만 아카아시였다. 늘 애같은 면이 많아도 이렇게 가끔씩 보여주는 듬직한 모습에는 새삼 연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그럼 오늘 잠자리부터 어떻게 할지 정할까요."



 다시 기운을 차린 아카아시는 이 시점에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기로 했다. (원래 아카아시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 작은 어리광은 이정도로 적당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얇은 반팔로만 버티기에는 점점 추워지는 가운데 추위를 버틸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지금의 기온이라면 보쿠토와 둘이 껴안고 자면 못 버틸만한 온도도 아니었으나 새벽에는 더 추워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불부터 피우는게 제일 먼저입니다만,"

  "...."

  "성냥이나 부싯돌같은게 있을리도 없고."

  "...."

  "보쿠토상..?"



 열심히 불피울 궁리를 하는 아카아시를 두고, 무슨일인지 보쿠토는 옆에서 안절부절해했다. 전체적으로 좀 움츠려진 모습이었다.



  "어디 안좋아요?"

  "아니..!"

  "그럼 화장실?"

  "아니.. 그런거 아니야."

  


 아픈것도 아니다. 화장실이 급한 것도 아니다.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질문에 도리도리 고개를 저을 뿐 이유에 대해선 설명이 없었다. 아카아시는 갑자기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의아해 하고 있었는데 번뜩 머릿속에 스치는 말이 하나 있었다.



  "불."

  "(움찔)"

  "바지."

  "(움찔움찔)"

  "오른쪽."

  "(움찔움찔움찔)"

  "....라이터.."



 아카아시의 눈빛에 무서운 살기가 어렸다. 보쿠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어렴풋이 작은 직사각형의 윤곽이 드러나 있는게 보였다. 라이터였다.



  "아..아카아시..화 내지 말고 들어봐..!"

  "변명은 필요없습니다. 담배도 빨리 내놓으시죠."

  "아니, 아니. 이건 내게 아니라.."

  "가방에 숨겨두신 겁니까?(뒤적뒤적)"

  "없어! 뒤져도 안 나온다니까."

  "그럼 뒷주머니?"

  "으악-!"



 아카아시 검사님의 고운 손이 서슴없이 보쿠토의 엉덩이를 만지작거렸다. 당황한 보쿠토가 새삼스레 얼굴을 붉혔다. 



  "아카아시..손 좀..!////"

  "왼쪽 주머니인가.."



 진지한 검신님은 열과 성을 다해 열심히 검문중이었으나 수사를 받는 용의자님께서는 엄한 생각에 달아오르는 중이셨다. 이윽고 아카아시의 손이 셔츠의 주머니가 있는 가슴께까지 올라가자 보쿠토가 덥석 팔목을 잡아 동작을 멈췄다.



  "뭡니까. 역시 이쯤에 숨겨두신.."

  "그만-! 잠깐 내 말좀 들어봐, 아카아시."

  "...."



 '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 하는 넓은 마음으로 아카아시는 손에 힘을 빼고 보쿠토를 쳐다봤다. 아직 무죄판결이 난 것은 아니었다.



  "어... 일단 담배는 없어!"

  "그건 얘기를 들은 후에 제가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배타기 전에..."



 보쿠토의 라이터 취득경위는 지금으로부터 몇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보쿠토, 아카아시, 쿠로오, 츠키시마. 이 네명이 보트에 오를 무렵, 그 주인 아저씨가 모두에게 구명조끼를 하나씩 나눠줬었다. 설마하니 바다가 잔잔해서 바다에 빠질일은 없겠지만은 하나씩 가지고는 있으라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네 명은 모두 조끼를 보트 구석에 처박아 뒀었다. 부피도 있고 내 입고있으려니 불편한게 당연했다. 후에는 멀미까지 하고 있었으니 더 갑갑해서 입을 일이 없었다. 물론 지금와 생각해보면 입고 있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 조끼를 나눠주고 쿠로오네부터 한 명씩 보트에 올랐다. 마땅히 발 디딜 받침대가 없어서 아저씨가 타는 것을 도와줬는데 보쿠토는 아래에서 아카아시를 잡아주고 제일 마지막 순서로 보트에 올랐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받은 라이터 하나. 나머지 세 명은 선실에 벌써 내려가있었고, 보쿠토와 아저씨 둘만 남겨진 위에서 라이터하나를 비밀스레 건네받았다. 자신은 운전을 해야하니 배에서 내리기 전까지 잠시 맡아달라면서. 이상한 논리였지만 서비스로 담배 한 개피도 받았다.


 보쿠토는 얼떨결에 받기는 했지만 속으로 여행을 오기전 아카아시와의 금연약속이 떠올라 극심한 내면갈등을 일으켰다. 그리고 결국 '한 번은, 하나는 괜찮을 거야!' 하고 열심히 자기합리화를 마친끝에 담배에 불을 붙인 순간..!


 갑자기 불지도 않던 바람이 불어 배가 술렁 휘청임과 동시에 담배 한 개피는 한번 빨아보지도 못한 채 바닷속으로 생을 달리 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흐음.. 그렇군요.."

  "응, 이거 내꺼 아니라니까. 담배도 없어!"



 이야기를 전해들은 아카아시는 미묘한 표정이었다. 보쿠토의 긴장되는 시간이 지나고 아카아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하더니 곧 판결을 읊었다.



  "확실히 라이터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오!"

  "대신 보쿠토상은 금연약속 어기셨으니까 벌을 받으셔야겠네요."

  "아카아시 진짜, 만져만 봤어. 만져만. 응?"

  "불도 붙이셨잖아요. 명백한 위반행위입니다."

  "아카아시이..."



 아카아시의 한마디에 보쿠토의 얼굴이 금세 울상이 됐다.



  "하지만."

  "하지만?"

  "지금은 위급상황이고."

  "...."

  "보쿠토상도 충분히 반성하고 계신것 같으니."

  "...."



 선처의 여지가 보이는 놀라운 '하지만'의 마법덕에 울상이던 보쿠토의 눈에 기대감이 차올랐다. 아카아시, 나 엄청 반성하고 있어..!



  "가방을 압수하는 정도로 용서해 드릴께요. 기간은 제 마음입니다."



 아카아시..기분 안 풀렸구나... 아카아시는 무표정으로 시원스레 얘기하고 있었지만 보쿠토는 좌절했다. 보쿠토가 진짜 용서받는 날은 아마도 저 가방을 돌려받는 날이 될 것이었다.


 

  "라이터도 있겠다, 추우니까 얼른 불 피우시죠."

  "내가?"

  "그럼 제가 할까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보쿠토상 팬티를 땔감으로 쓰기전에 빨리 하세요."

  "흑."



 인질로 잡혀버린 제 가여운 팬티에 보쿠토는 나뭇가지를 주우러 터벅터벅 발을 옮겼다. 해가 절반 이상 넘어간 때였다.






 


 



_continued






R(린)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